저자가 누군지 정말 궁금해진다. 전문 글쟁이보다 더 글쟁이스럽다고 해야 할까? 마치 소설가 천명관이 빙의한 느낌이다. 은유와 비유, 다양한 스토리로 무장한 이 책은 흡입력이 대단하다. 빛의 속도로 읽어 내려간 <검사 내전>은 사실과 위트 풍자와 해악이 잘 버무려져 있다. 검사로서 자신의 경험담과 법철학에 대한 문제를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현직 검사가 이렇게 글을 쓰면 글 쓰며 밥벌이하는 전문 글쟁이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책은 크게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천태만상 사기꾼들과의 치열한 전쟁(?)을 묘사한 '사기 공화국 풍경', 검사 생활하면서 만났던 특이한 범죄자들을 통해 인간을 통찰한 '사람들, 이야기들', 조직 내 저자의 모습을 그린 '검사의 사생활'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철학의 문제를 진진하게 풀어놓은 '법의 본질'
이 네 가지 주제는 모두 유의미한 메시지를 독자에게 던진다.
천태만상 사기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악한 인간의 양면성을 보게 되고, 피해자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라난 욕망의 허망함을 목도하게 된다. 세상에 값비싸고 나쁜 물건은 있어도, 값싸고 좋은 물건은 없다는 저자의 말을 통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새삼 실감 난다. 하지만 사기는 공짜 점심이 가능하다는 인간의 착각이 있기에 가능하며, 인간의 욕망은 이를 추동한다. 그리고 사기꾼들은 이런 인간의 욕심을 적절히 이용한다. 피해자들은 결국 빠져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검사 내전>에 등장하는 피해자들은 안타깝게도 한결같이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사기꾼들은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다. 악질 부자들만 골라서 터는 일지매나 홍길동이라면 그래도 봐줄 만하지만,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 등쳐먹는 인간들을 보면 인간의 추악함에 진저리 처지게 된다. 저자는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간 파렴치한 사기꾼들을 잡아 감방으로 보냈지만 피해자를 구제하진 못했다고 술회한다. 회복 불능의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지만 회복은 요원하다. 법은 그들에게 너무 멀리 있다.
저자는 자신은 검사복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상명하복에 충실한 조직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조직 분위기상 할 수 없는 말도 서슴지 않고 내뱉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상사의 명령에 응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강단이라면 조직 생활이 쉽진 않다. 부딪치고 까이는 일도 많다. 더구나 조직의 위계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검찰문화에서는 더욱 힘들지 않겠나 싶다. 김 검사와 같은 사람을 조직 내에서는 속된 말로 '또라이' 또는 '사차원'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또라이든 사차원이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하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강점이다. 어쩌면 그런 면 때문에 지금까지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책까지 출간했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제기한 법철학의 문제는 상당 부분 수긍이 간다. 변호사 수가 많아졌다고 해서 법률 서비스의 접근성이 더 확보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일부 잘 나가는 변호사의 수임료는 더 오른다며, 마치 수해가 나면 가장 귀한 것이 먹는 물이라고 하며 변호사의 수는 서비스의 공공성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사실 법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영역은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수가 증가하면서 양보와 타협으로 해결될 일도 송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어난다. 개체 수가 늘어나면 먹을 파이도 늘어야 하는 경제 상식이 시장에 적용된다. 변호사의 할 일이 많은 사회가 과연 건전한 사회인지는 지식검색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늘어나는 송사는 사회를 더욱 건조하게 만든다.
저자는 기층 법률가들과는 달리 법률 분야에 과학기술 도입을 적극 찬성한다. 인공지능에 의한 법적 분쟁 해결이 법에 대한 신뢰와 공정성을 높인다고 강조한다. 개인적으로도 찬성이다. 유전무죄 무전 유죄가 만연되어 있는 법조계를 국민들도 신뢰하지 않는다. 신뢰가 깨진 것은 다분히 법조인들의 책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 도입을 반대하는 법조인들은 밥그릇 지키기라는 사회적 지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저자는 법률가들이 제기하는 과학기술의 문제는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임을 역설한다. 인간 존엄의 파괴는 갑질과 부당한 착취를 일삼는 사람들에 의해 이미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과학이 파괴하기 이전에 이미 인간들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고 있다.
'생활형 검사의 사람공부, 세상 공부'라는 책의 부제가 책 내용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은 드라마 속 멋지게 범인을 때려잡는 거창하고 박진감 넘치는 검사 이야기가 아닌 생활형 검사의 치열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검사로서의 경험은 사람공부와 세상 공부를 하기에 더없이 좋은 직업이 아닌가 싶다. 사실 사람을 공부하는 것이 세상을 공부하는 것이 아닌가? 다양한 인간, 특히 범죄자의 범죄 피해자들의 모습 속에서 저자는 사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얻었으리라.
<책 속으로>
논리와 이성의 천적은 부조리가 아니라 욕심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주성분은 욕심, 욕망, 욕정이다.
우리는 '욕심'이라는 거친 바다 위를 구멍 뚫린 '합리'라는 배를 타고 가는 불안한 존재들이다.
욕심은 불가역적이다. 하데스의 문처럼 언제나 열려 있지만 되돌아올 수는 없다. _63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듯 위기는 위기다. 그것이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은 위기를 겪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위기가 진짜 기회라면 위기를 만들어주는 컨설팅 회사가 있어야 한다. _103
청년에게 희망을 주라는 말도 사기라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식들에게 희망이 아니라 특혜를 준다. 청년에게 위로를 건넨다는 교수나 종교인도 정작 관심은 돈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_109
"뉴스 매체는 결코 타락할 수 없는 공명정대한 존재가 아니라 진실과 아무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상처 입히려는 강한 욕구를 가진 영리 기업일 뿐이다. _164
단순한 연민은 자신의 선량함을 자랑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식품이 될지 모르나 사회 전체로 보면 오히려 악이자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_189
양념과 아부는 비슷하다.. 재료가 좋으면 별로 필요 없다. 원물의 질이 떨어지니 양념으로 미각을 속이는 것이다. _233
결국 법에 의한 해결은 모두 형사법으로 귀결되는 것이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법의 속성이자 한계이다. _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