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찬호 〈모멸감〉 - 모멸감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
|---|
|
|
모멸감
작가 : 김찬호
인간이 가지는 불쾌한 감정 중에 인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유발되는 감정이 있다. 모멸감이라 불리는 이 감정은 인간이 무리를 이뤄 사는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감정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모멸감은 힘의 우열에서 비롯된 물리적 폭력, 타인의 언어나 시선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타인이 아닌 자신을 객관화 하여 평가할 때 발생하기도 한다. 조금은 복잡 다단 하지만, 근본은 단순하다. 바로 타자로부터 기인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공동체는 빛을 잃어 가고, 물리적 집단만이 남아 비교에서 비롯되는 우월과 열등의식은 집단 속에서 공고히 자라난다.
최근 우리 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갑질 논란은 수치와 굴욕, 모멸감이라는 감정을 동반한다. 백화점 주차 아르바이트 직원을 무릎 굻게 한 부유층 사모님(?)에서부터 땅콩 회항으로 영어의 몸이 된 항공사의 임원에 이르기까지 그 근본에는 약자에 대한 우월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우월감이 언행으로 확산되면 상대방은 수치와 모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자본이 곧 권력인 사회에서 빈부 양극화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는 모멸감을 일으킬 상황을 더욱 확산 시킨다.
김찬호의 <모멸감>('14.3 문학과 지성사)은 이러한 현상을 대단히 다양하고 밀도있게 분석해 낸다. 역사적 맥락에서 신분제는 붕괴 되었으나 신분의식이 살아 움직이는 사회적 분위기,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직업의 귀천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정서, 동남 아시아 인에 대한 혐오와 역으로 백인에 대해서는 열등의식을 갖는 이중적인 인종 서열주의, 학벌 컴플렉스와 학벌 우월주의 등 굴욕, 수치,모멸감을 일으키는 요소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수 없이 접하는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예리한 시각으로 파헤친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보며 낯이 뜨거워졌다. 나도 저자의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정서와 분위기에 편승해 타인에 대한 배려없이 부지불식 간에 내 뱉는 말에서 내 주변의 사람들도 모멸감을 느꼈으리라. 교묘한 완곡 어법으로 상대방을 비하한 적도 있었을 것이고, 상대방은 내 의도에 상처 받았을 것이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한국적 정서와 사회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뒤틀린 자아가 타인을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무기가 되었지 않았을까?
저자는 모멸감의 사회적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조심스럽게 끄집어 낸다. 정의보다 소중한 것은 품위임을 언급한다.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의 '품위 있는 사회(Decent society)'라는 말을 인용하며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이 모욕당하는 상황에 맞서 싸우거나 그럴 만한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우리사회 감정노동자들은 소비자의 부당한 요구나 항의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인다. 하지만 서양의 경우 친절한 서비스를 넘어 공동체가 만들어 놓은 경계를 넘어설 경우 가차없이 반격을 가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손님도 품격이 있을 때 왕 대접을 받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합리적 정서가 정착되기 위해 구성원의 노력이 필요함을 저자는 역설한다.
또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동체의 배려가 절실함에 대해서도 조언한다. 예를 들어 청소 노동자가 쉴 수 있는 식사와 휴식을 가질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주는 것 등 작지만 실질적인 대안들도 제시한다. 소수자들의 연대와 결속도 중요한 덕목임을 역설한다. 핸디캡과 컴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도록 같은 아픔을 가진 자들이 함께 연대하여 공동체를 결성하는 것도 대단히 유의미 하다고 한다. 대머리 모임, 유방암 환자들의 공동체 등 다양한 모임의 사례를 통해 부정을 긍정으로 환원시킨 사례를 소개한다. 또한 개인에 대해서는 화폐의 논리를 넘어서는 인격의 수양을 논한다. 약자를 위한 봉사활동의 참여는 좋은 자기 수양의 예라고 한다. 봉사는 타인을 위한 행위 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돌아보고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는 대단히 실제적인 행위임을 강조한다.
수치와 굴욕 모멸이 없는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다. 하지만 이기적인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과 같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를 모욕하면 자신도 모욕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건강한 개인이 모여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를 찾으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람간의 상호작용은 지구촌이 멸망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타인이 자신을 부당하고 불편하게 대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순 없다. 하여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비교프레임에 매몰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멸감> / '15.1.2 / 이스트힐(East-hill)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