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눈에 띈다. 지렁이의 기도라니... 기독교 출판사 대표 김요한 목사님이 쓴 책이다. 지렁이는 저자가 자신을 겸손하게 지칭한 말이다.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저자는 자신의 기도 생활을 소개하며 기도의 중요성을 풀어냈다. 자신의 기도 간증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가독성이 뛰어나고 읽기에 편하다. 저자의 영적인 체험과 신학적 이론이 잘 버무려져 쉽게 독자에게 다가간다. 페북 친구이기도 한 김요한 목사가 기도를 통해 살아온 삶의 여정을 들여다보면 기독교인으로서 기도의 삶이 주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게 된다. 기도와 관련된 영적 체험을 소개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비 기독교인이 읽기에는 대단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철저히 기독교인을 위한 책이다.
영적 체험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저자가 경험한 기적들이 신기하고 부러울 따름이다. 방언과 통변, 병 고침과 예언들은 소위 세상의 상식과 합리라는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운 영역이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방언이나 통변, 타인의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 등을 기독교에서는 은사라고 지칭한다. 자신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산물이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런 다양한 은사를 받은 저자의 체험은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성령체험과 같은 신비로운 경험보다는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친근한 관계 유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거룩해지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삶 중에서 8할은 기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창조자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기도생활의 중요성을 수 없이 강조한다.
저자는 기도를 통해 용서, 사랑,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참된 기도를 할 수 없고, 감사와 사랑이 없이 하나님을 대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기도는 기도자의 필요를 채우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도구이지만 기도를 통해 삶의 많은 부분이 정화된다. 기도자의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에게 온전히 향하지 않으면 기도는 쉽게 되질 않는다. 하여 기도 자체도 의미 있지만 기도의 삶이 곧 일상을 삶을 올곧게 만들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삶을 풍성하게 하는 기도의 능력은 우리의 노력보다는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하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기도 응답의 비결은 우리의 열심, 끈질김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신실한 성품에 기초한다."_93쪽
기독교 신앙을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다.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행위는 종교행습이고 그 자체로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다. 그래서 다른 종교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신의 존재를 믿고, 선한 행위를 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고, 필요를 채우기 위해 복을 기원하는 것이 타 종교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면 기독교는 한 발 더 나아간다. 기독교 신앙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Lordship(주인됨)과 인격적 관계에 있다. 일반적인 타 종교에서 말하는 기도는 신을 향한 기원과 간구이지만, 기독교 신앙에서는 기도가 말하고 듣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다. 일방적인 부르짖음이 아니라는 의미다. 바로 인격적 만남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이 기도이다. 저자는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말을 통해 인격적 만남과 기도의 의미를 연결하여 설명한다.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관계는 "나와 너" "혹은 "나와 그것"으로 나뉜다고 갈파했었다. 우리는 하나님과 "나와 너"의 관계 즉 인격 대 인격의 관계를 맺든지, 또는 "나와 그것" 즉 인격대 사물의 관계를 맺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라딘의 요술램프에 등장하는 거인으로, 도깨비방망이로 혹은 지패 한 장 넣어주면 원하는 상품을 제공하는 자판기 정도로 여기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겨우 "그것"으로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가 하나님께 여전히 무언가 계속 말을 건네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 317쪽
조금 과격하게 이야기한다면 기도가 없는 삶은 기독교인의 삶이라 할 수 없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핵심인데 관계가 부재하다면 전제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도의 삶을 통해 얻은 무수히 많은 열매를 소개하며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고 고백한다. 자신을 지렁이로 비유한 것도 기도 없이 이 험한 세상을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없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자신은 약하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 수 없어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고백이 기독교 신앙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메시지 아닐까?
<책 속으로>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열심이나 태도 이전에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나 바른 지식을 갖고 있으며, 그 지식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얼마나 신실하게 신뢰하고 있느냐다._96쪽
예수님이 주신 기도에는 하나님의 통치가 먼저이고, 그다음에 인간의 실존적 필요가 뒤따른다. 이것이 올바른 순서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가장 위대한 기도인 동시에, 위험한 기도다."(김영봉)_145쪽
성경은 두려움이 가장 큰 죄라고 가르친다. 실제로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요구하는 계명은 두려움을 버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왜 인생을 살면서 두려워하는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_153쪽
자녀는 잠을 자고, 부모는 일한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법칙이다. 우리는 쉬고 하나님은 일하신다. 우리는 그 사실을 온전히 신뢰하기 때문에 숙면을 취할 수 있다. _154쪽
내가 믿기로는 지성과 영성은 하나이며, 성경도 분명히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_167쪽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은 고작 우리 내면의 심리적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 혼자 종교란 이름의 마약에 도취되어 기분 좋은 경험을 맛보기 위함도 아니다. _179쪽
"모든 사람은 용서가 훌륭한 일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용서해야 할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_186쪽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궁극의 목표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소원하는 것을 수중에 얻고자 함이 아니다. 여러 가지 신기하고 현란한 성령 은사를 체험하고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최종적인 목표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거룩해지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거룩해짐의 핵심에는 바로 "사랑"이 있다. _205쪽
우리는 우리의 환경을 바꾸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과 마음을 바꾸길 원하신다. _24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