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시절 아이가 생겼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힘들어했는데 아이가 생겼으니 아내와 나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병원에서는 뇌에 문제가 있어 장애아가 태어날 수 있다고 했다. 이례적으로 2시간 이상의 초음파 검사를 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의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리고 고위험 임산부를 진료하는 전문의가 배정되었다. 임신 중 몇 번의 검사가 있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의사는 주법(State Law)에 의해 낙태도 가능하다고 했다. 10개월 동안 수 없이 많은 고민을 했다. 아내와 나는 장애아가 태어나도 우리가 감당할 몫이라고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낸 시간은 인고의 시간이었고 배움의 시간이었다. 10개월이 지나 예상과 달리 정상아가 태어났다. 의사는 미러클 보이(Miracle boy)라고 감탄을 연발했다. 그렇게 아들은 세상의 빛을 봤고 우리는 기적을 봤다.
귀국 후 아들의 유치원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유치원 교사들은 아들이 너무 산만해서 힘들다고 했다.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혹시 아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걱정했다. 초등 1학년 시절에도 아들의 산만함은 계속되었다. 학교 선생님이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정신과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의심했다. 아내로서는 괴로운 전화였고, 혹시 아이가 잘못된 게 아닌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그 고민은 2학년이 되면서 사라졌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은 아들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들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선생님은 아들의 장점을 보려고 했다. 산만함을 활동적으로 이해했고, 재기 발랄함으로 해석했다. 이후 고학년 담임 선생님들도 그들의 시각에 따라 아들에 대한 평가가 조금씩 달랐지만 전체적으로 긍정적이었다.
브라질 작가 바스콘 셀라스의 자전적 소설인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한 소년의 가슴 아픈 삶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 제제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마치 내 아들을 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제제는 말썽쟁이에다 심한 장난꾼이다. 시도 때도 없이 말썽을 일으켜 주변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그러니 주변에서는 제제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꾸지람과 매 맞는 일이 일상화된 제제에게 그래도 세상은 호기심 천국이고, 재미로 가득한 놀이터다. 그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고을 리 없다. 어른들은 말썽쟁이 제제를 악마가 깃든 악동이라고 칭하며 마을에서 해악을 끼치는 존재로 생각한다. 제제에게는 대화 상대가 있다. 밍기니라고 이름 붙여진 오렌지 나무다. 지치고 힘들 때면 밍기니에게 가서 말을 건다. 자신의 내면의 생각들을 쏟아내며 위로와 평화를 얻는다. 밍기니는 제제의 삶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밍기니를 의인화 하여 제제와의 대화를 조명한다.
호기심 많은 제제는 돌아다니길 좋아한다. 하지만 제제의 부모는 말썽쟁이 제제가 집 밖을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제가 구두닦이를 하여 돈을 벌어올 때는 하루 종일 밖에 나갈 수 있다. 구두를 닦으면서 제제는 포르투갈인 뽀르뚜가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제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 중에 하나다, 제제에게 친절을 베풀고 친구처럼 지낸다. 제제의 감수성과 천재성을 발견한 뽀르뚜가는 제제에게 한없는 사랑을 부어준다. 제제는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해 주는 뽀루뚜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뽀루뚜가의 죽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제제는 절망한다. 힘들고 외로울 때 위로가 되어 주었던 뽀루뚜가의 죽음은 제제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제제는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후에 오는 엄청난 상실의 아픔이 그의 정신과 몸에 변화를 가져온다. 제제는 너무 일찍 상실의 슬픔을 경험하고, 너무 빨리 철이 들어 버린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영화로 연극으로 재탄생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아온 소설이다. 아내는 중학생 때 이 책을 접하고 밤새도록 울었다고 한다. 주인공 제제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슬픔을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아들도 나와 함께 이 책을 읽었다. 마음에 울림과 떨림이 전해진다고 했다. 이 번 주말에 아들과 독서 토론을 할 계획이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되지만 대략 그림이 그려진다. 아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과정, 성장하면서 겪었던 복잡다단했던 감정들을 복원하여 풀어내야 할듯하다. 아들에게 전해줄 메시지는 하나로 모아진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사실 말이다.
<책 속으로>
"제 마음속에서 죽이는 거예요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언젠가 죽어요."_232쪽
"뽀르뚜가, 당신은 내가 꾸는 모든 꿈에 나온단 말이에요. 내가 어딜 가든지 당신은 언제나 함께 가요
그런데 가끔 수업 시간에 교실문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 당신이 찾아와서 작별 인사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_254쪽
어떤 이들에게 죽는다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 몹쓸 기차가 한 번 지나가면 그만이잖아. 그런데 왜 내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이다지 어려운 걸까? 내가 가지 못하도록 모두들 내 다리를 붙잡고 있나 봐
_27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