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책장에서 나의 손길을 기다린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휴가 중에 읽었다. 비행기 안에서 읽은 책은 3시간 반의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는 역할 이상의 가치를 부여했다. 오래전 워낙 유명세를 치렀던 소설이지만 신 작가의 표절 논란으로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다. 하지만 여행길에 챙겨갈 책으로 소설만큼 좋은 책이 없는 데다가 많은 분들이 일독을 권해서 챙겨갔다. 책을 다 읽고서 이 책을 왜 지금에서야 읽었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을 들었을 정도로 좋은 책이었다. 섬세한 감성을 기반으로 엄마라는 존재를 매우 현실감 있게 담아낸 <엄마를 부탁해>는 신경숙 작가의 최고의 책이 아닐까?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가족은 엄마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가며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 나선다. 엄마의 부재가 현실이 되는 순간 자녀들은 엄마를 제각기 다른 시선으로 응시한다. 엄마와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엄마를 잃어버렸지만, 그전에 이미 엄마를 잊고 산 것에 대해 자책한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엄마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게 삶을 버텨 왔는지 기억의 파편들을 맞춰가며 괴로워한다. 더 따뜻하게 더 살갑게 엄마를 대해 줄 것을... 왜 막대했을까? 항상 후회는 뒤늦게 온다. 엄마의 부재는 그들에게 전에 느낄 수 없었던 엄청난 상실감으로 다가온다. 그들에게 엄마를 잃어버린 것과 엄마를 잊고 산 것은 결국 같은 의미였다.
엄마 '박소녀' 그녀는 가정이 전부였다. 자녀를 위해서는 뭐든지 희생하는 헌신적인 엄마였다. 엄마는 배움이 짧아 글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마음의 눈은 그 어떤 학식이 높은 사람보다 높았고, 사랑의 깊이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주고 난 후에 엄마에게 남겨진 것은 철저한 상실이었다. 가족을 잃었고, 기억을 잃었고, 자신을 잃었다. 기억을 점차 잃어가는 엄마는 가족 모임을 위해 상경 후 서울역 지하철에서 남편의 부주의에 의해 분리되면서 가족과 이별한다. 엄마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너는, 당신은, 그는, 엄마를 찾아 나섰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엄마의 부재는 계속되었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따뜻한 흔적들을 곳곳에 남겨 놓았다. 그 흔적들은 엄마의 부재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온기를 불어넣고 떠났다. 아들과 딸은 엄마가 뿌려 놓은 사랑의 흔적들과 마주하며 생각에 잠긴다. 그들은 진짜 엄마를 몰랐다. 마땅히 존재하는 곳에 존재했기에... '당연' 이 주는 익숙함은 익숙한 대상의 실체를 볼 수 있는 눈을 가린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모습을 보려는 노력을 왜 하지 않았을까?
엄마는 그들에게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을 부여한다. 그리고 피에타 상을 보면서 그들은 엄마를 품어 줄 엄마가 필요함을 인식한다. 그리고 엄마를 보내준다. <엄마를 부탁해>는 독자들로 하여금 엄마에 대한 수없이 많은 기억들을 복원케 만든다. 엄마의 존재가 주는 푸근함과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존재의 무게감을 느끼게 만든다. 작가는 우리 시대 엄마라고 불리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길 원했던 것 같다. 밀도 있는 사색의 시간과 경험이 없다면 길어올릴 수 없는 내용과 감성들... 무엇보다 엄마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은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에 머물러 있다. 엄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당신은 나에게 어떤 분일까?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일까? 생각이 깊어진다.
